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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변화  

                                                                                                                   유 경 숙  멜라니아

 

있는 힘을 다해 지구를 덥게 만들었던 여름도 기운이 빠지는지 슬슬 뒷걸음을 친다.

추석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아무리 애를 써도 절기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절기에 따른 날씨의 변화를 싫든, 좋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원칙이다. 유난히 힘들었던 여름이어서인지 절기의 변화가 반가운 요즘이다. 

오래전 소설 모임에서 알게 된 동생이 있다. 정서적으로 잘 맞아 가깝게 지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던 어두운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토해냈던 동생과 나는 친자매보다 더 친했다. 그 동생이 소설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며 모임을 떠난 게 사년 전쯤이었다. 얼마 후 평소에 빼놓지 않고 했던 태극권의 지도자자격증을 취득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결실을 맺기 마련이라니까.

그 동생이 태극권을 지도하며 재미있고 멋있게 사는 줄 알았다. 작년 초에 조금 탁해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나는 대뜸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다.

언니, 저 암이래요.

장난하지 마. 네가 무슨 암씩이나?

누구보다 건강관리를 잘하던 사람이라 장난으로 느꼈다. 혈액암이라는 것이다. 몇 달이 지나고 연락을 해보니  재발이 되어 항암치료 중이었다. 올봄에 항암치료가 끝나 몇 년 만에 얼굴을 봤다. 몇 년을 만나지 않았어도 어제  만났던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얼굴이 야윈 듯 보였고 몸도 더 날씬해졌다. 워낙 밝고 맑은 성격이라 여전히 잘 웃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만났다. 파티마 성지에서 사 온 묵주팔지를 전해줬다. 

그 동생이 부담스럽게 여길까 봐 그냥 차고만 다니라고 했다. 천주교 학교의 교사인 남편과 결혼할 때 영세를 받고는 냉담을 했다는 말을 오래 전에 들었다.  혹시 내가 선물한 팔지가 성당에 다시 나가라는 압박으로 여길 것 같아  주얼리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디자인이 독특한 은팔지였다. 여행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으며 깔깔 거렸던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는 내가 임플란트를 하느라 복용한 항생제에 부작용이 생겨 얼마간 연락을 하지 못했다. 항생제 부작용에서 벗어나고 나서 연락을 했더니 또 재발해  체중이  10kg나  줄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경주의  요양병원으로 가겠다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묵주 팔지 꼭 챙겨서 가. 오늘부터 매일 너를 위해 묵주기도 드릴거야. 아마  네가 끼고 있는 묵주도 같이 기도에 동참할 거라 믿거든. 

언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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