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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 속의 돌멩이”
                                                                                                        수리산성지 전담신부 박 정배(베네딕토)
찬미예수!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도움으로 지난달에 매입한 땅 대금을 조금씩 갚아가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얼마만큼 차지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의 관계가 아닌 다른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안락한 돈이나 눈앞에 놓인 쾌락과 욕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의무감으로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혹시나 그리스도교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서 자기 의지로는 버릴 수도 없는, 신앙이 자신의 구두에 부모가 넣어준 불편한 ‘구두 속의 돌멩이’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묵상해 봅시다.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라는 대담집 중에 어느 젊은이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벌었는데, 그 돈으로 그가 하느님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고작 교회에 가서 십일조와 헌금을 내는 것뿐, 나머지는 전부 쾌락을 위해 썼다.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몹시 어려웠다. 그는 胎中(태중)교우라는 것 때문에 늘 양심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욕망을 좇는 삶을 청산하지 못하기에 그리스도교는 그에게 양심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 아무런 양심의 갈등 없이 술 먹고 노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다. 돈은 있고 눈앞의 쾌락은 너무도 멋지게 보이고, 그래서 그는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자체가 어느 소설가의  표현처럼 ‘구두 속의 돌멩이’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눈물어린 기도를 하는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비로소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된다. 늘 성경 속에만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만의 하느님이시던 분이 실제로 살아계신 자신의 하느님이 되셨다. 결국 문자 속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체험한다.
  서방교회의 최고 교부이신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어머니 성녀 모니카의 기도와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339-397)의 도움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한 성인이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지도로 그리스도교에 접근하게 되었으며 사막교부 성 안토니우스(251-356)에 대한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을 세차게 뒤흔들어 놓았다. 왜 성 안토니우스의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가? 복음의 권고대로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을 따라나선 수도승들의 삶에 비해, 아직도 엉거주춤 망설이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고백록에 따르면 그는 괴로워서 무화과나무 밑에 홀로 주저앉아 울음보를 터뜨리며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이옵니까? 지금은 왜 아니랍니까? 어찌하여 제 더러움이 지금 당장 끝나지 않나이까?”라고 울부짖고 있을 때“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는 어린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 읽으니 로마13,13절이었다. 이 한 말씀에 그는 마음에는 기쁨이 넘쳐흘렀고, 모든 어둠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하느님 사랑에 눈뜬 성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늦게야 임을 사랑했나이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임을 사랑했나이다.”
우리 자신이 체험하는 것처럼 죄는 우리 곁에 항상 있고 죄를 짓는다.(로마7,20참조) 또한 어느 때는 신앙이 귀찮은 존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죄보다, 나의 형식적인 신앙보다 더 큰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다.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신앙이 구두 속의 돌멩이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와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녀를 위해서, 아내와 남편을 위해서, 친구와 이웃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 대한 모니카 성녀의 기도와 위의 젊은 부부를 통해 알 수 있다.
끝으로, 후원회원 형제자매님들! 9월22일 순교자현양대회에 초대합니다.
현양대회에 많이 참석하시어 최 경환 성인의 영성을 느끼고 체험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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